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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문화를 포용할 수 있는 한국 사회를 기대합니다”

세계적 석학 호미 바바 하버드대학 인문학연구소 소장이 지난 9월 3일부터 7일까지, 4박 5일간 한국을 방문했다. 영미문학과 탈식민주의, 다문화주의에 대한 그의 폭넓은 관심과 깊은 학문적 성과는 유네스코 아태국제이해교육원 교원연수행사 기조연설 및 이화여대 주최 ‘타자의 문화정치학’ 국제 컨퍼런스 강연에서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전방위적인 문화 및 인적 교류 등으로 인해 다문화국가적인 성격을 점점 더 많이 띠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 대해 그의 연구가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지 들어보았다

1. 하버드대의 故새뮤얼 헌팅턴 교수가 주장한 ‘문명의 충돌’은 수년간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교수님의 문화 혼성성 이론은 이와 사뭇 다릅니다.
기본적으로 문명충돌론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문명충돌론은 가까이 접해 있는 문명들과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문명을 구분짓고, 이를 바탕으로 타 문화를 배척하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순종’의 문화들이 충돌을 일으킨다는 것인데, 저의 혼성성 이론의 핵심은 문화가 ‘잡종’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문화도 순수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각기 달라 보이는 문명과 문화도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서로 만나고, 또 영향을 주고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상호 교류할 수 없는 문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따라서 현재의 모습만 놓고 문화의 순수성을 따져서는 안 되고, 우리 문화권에 들어온 다른 문화 요소들을 배척해서도 안 된다는 뜻입니다. 자신의 문화가 절대적이지 않고 그 속에 다른 문화와 연결고리가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될 때 포용과 관용을 바탕으로 한 진정한 다문화주의가 가능할 것입니다.

2. 방한기간 중 이화여대에서 하신 ‘전 지구적 기억에 대하여(On Global Memory: Reflections on Barbaric Transmission)’ 라는 제목의 강연에서도 교수님의 그러한 시각이 잘 반영된 듯 합니다.
자신의 문명과 차이가 나는 문명을 ‘야만’이라 규정함으로써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곳곳에서 충돌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9.11 테러 이후 문화적 교류와 관용의 문제가 정치 안보 문제의 뒤편으로 밀려나면서, 타국과 타자의 문화를 정치 안보 문제로만 바라보고 평가하는 경향이 심해졌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처럼 전 지구적인 규모로 문화 접촉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내부와 외부를 구분하는 건 의미 없는 일입니다.
독일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어떤 문명이든 치명적인 위험은 더 이상 외부에서 오지 않는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지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전 지구가 한가족’이라는 식의 순진한 미사여구로 모든 걸 덮으려 해서도 안 됩니다. 문명과 야만 사이에 있는 유사성과 타자성을 동시에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세계화를 ‘(경제적・군사적으로) 힘센 문명의 약한 문명에 대한 일방적인 침투’로 보아선 안 됩니다. 문화 혼성성 논의에서도 밝혔듯 세상에 고유한 문화라는 건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어느 한쪽의 문화가 다른 쪽을 일방적으로 지배하거나 장악하는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 겁니다.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우월하거나 열등한 문화라는 구분을 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예컨대 할리우드 영화는 한국과 프랑스를 비롯해 여러 나라에서 ‘문화 침투’의 주범으로 몰리고 있지만, 이를 무조건적인 규제로 해결하려 해선 안 됩니다. 대신 좋은 영화학교를 세우고 다양한 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힘을 쏟는 게 더 효과적인 전략입니다. 이처럼 세계화에 있어서 각 나라가 경제, 정치, 문화적인 책임감을 균형있게 갖춘 체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계화에는 무역이나 금융의 교류 외에도 ‘사람의 이동’이 있기 때문에, 경제적 효율성뿐 아니라 윤리적인 측면도 반드시 고려해야 합니다.



3. 하지만 세계화의 결실이 전 세계 국가들에 공평하게 돌아가지 않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교수님은 ‘탈식민지 과정’을 충분히 겪지 못한 이들 나라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계신데요.
세계화에는 누구나 인정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 반면에 반인간주의적이고 불균형적인 문제 역시 없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이러한 문제에 대해 해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50년대에 서구의 식민통치로부터 독립한 이들 국가 대부분은 정신적・물질적 인프라가 마련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세계화라는 도전에 직면하였습니다. 세계화라는 도전을 적극적으로 감내하고 이겨낼 수 있는 이러한 인프라 구축의 과정을 ‘탈식민지 과정’이라 정의하는데, 이 과정을 충분한 시간을 두고 겪지 못한 개도국들이 당면한 문제는 지구 전체의 고민이기도 합니다. 물론 해당 국가들 역시 스스로 시간과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법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저는 특히 대학 같은 교육기관의 역할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문화 교류의 중요한 인프라라 할 수 있는 오늘날의 IT 혁명의 결실을 나누는 데 대학이 앞장서야 합니다.

4. 세계 각국은 점점 다문화화 되어 가고 있습니다. 한국도 예외일 수 없는데요, 이러한 다문화 사회가 갈등과 충돌 없이 잘 정착되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있어야 할까요?
다문화 사회로의 변화를 겪는 당사자들은 ‘우월한 문화는 없다’는 것을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합니다. 모든 문화가 평등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타문화와 외국인을 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 문제들을 논의하고 해결책을 함께 실행에 옮기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합니다. 특히 정부는 점점 많아지고 있는 국내 거주 외국인들에 대해 근거 없는 두려움을 갖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다양한 경로의 교육을 통해 국내 거주 외국인들의 동화를 유도하려는 경향이 강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국에 살고자 하는 외국인에게 무조건적인 한국화를 유도하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차별입니다. 그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포용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을 만드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