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7일과 18일 양일간 제10차 한독포럼이 독일 베를린에서 진행됐다. 한국측 김학준 한독포럼 회장을 비롯해 두 나라 학자와 정관계 인사, 언론인 등 50여 명이 두 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 교류에 대해 이틀 동안 깊이 있는 논의를 펼쳤다.
서로 긍정적인 자극을 주는
협력적 관계 실감케 해
오랜 기간 동안 독일은 한국의 역할모델이었다. ‘라인강의 기적’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산업화를 모색하던 한국에게 ‘한강의 기적’을 자극했고, 분단선 양측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를 반영한 통일과정은 그들과 달리 분단을 ‘완벽한 단절’로 체험했던 한국인들에게 찬사와 탄성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포럼을 통해 오늘날 세계의 중강국(中强國)으로 입지를 확고히 한 두 나라의 관계가 수평적이고 호혜적이며 상호보완적인 것으로 접어들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독일 측 참석자들은 저개발국가에서 동아시아의 지도적 국가 중 하나로 성장한 한국의 경험을 흥미로워했고,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유럽 국가들을 선도하고 있는 독일에 한국의 독특한 기술력이 결합되기를 희망했다. 오늘날 아시아를 넘어 유럽에도 신선한 물결을 일으키고 있는 ‘한류’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
회의는 1894년 건립된 유서 깊은 ‘제국의사당’과 부속 건물에서 열렸다. 이곳은 통일 후 독일 연방정부가 본에서 베를린으로 천도하면서 독일연방공화국 의회로 쓰이고 있다. 본회의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투명 돔은 독일 정치의 투명성을 상징한다. 1945년 소련군이 이곳을 점령하면서 남긴 수많은 낙서를 그대로 공개한 점도 인상 깊었다. 크고 작은 역사의 교훈 하나하나를 묻어버리지 않고 드러나게 하겠다는 의도다.
환경보호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 이어져
포럼 첫날인 17일, 양측 인사들의 주제발표와 토론에서는 양국이 가장 관심을 갖고 고민하는 문제들이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정치분야 발표에서 독일 측 인사들은 “중국이 경제력을 앞세워 국제정치적 영향력을 드러내는 것에 대해 우려가 있다.”고 전하며 독일과 한국이 대중 문제에서 더 많은 의견을 교환하고 협의할 수 있기 바란다고 말했다.
경제분야 발표에서는 오늘날 시대의 화두로 등장하고 있는 재생에너지 분야 협력에 대해 예상보다 훨씬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졌다. 필자는 앞서 취재했던 2006년 하노버 박람회에서 독일이 풍력 및 조력 에너지에 대해 가진 관심과 기술력에 감탄한 일이 있다. 당시 박람회의 화두가 ‘재생에너지’와 ‘인디아’였는데, 5년이 지난 지금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영향으로 독일은 장기적 원전폐기를 선언했다. 이는 국가 에너지수급 전체의 급격한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하지만 단기적인 방법론에 있어서는 고민이 깊을 수 밖에 없다. 한국 역시 그린성장의 선도국가로서 자리매김을 꾀하고 있으나 현실적 방법론에 대한 고민을 안고 있다. 양국 발표자들은 두 대륙에서 선진적인 기술력을 보유한 두 나라가 함께 해법을 찾아갈 수 있다는 점에 공감했다.
문화분야 발표와 토론에서는 최근 양국간의 문화적 교류가 정체되고 있음에 우려를 표시하면서 앞으로 특히 전문가들과 젊은 세대의 교류 기회를 강화해야 한다는 점에 양측이 인식을 함께 했다. 둘째 날에는 양측 참가자들이 치밀한 논의를 통해 양국 정상에게 보내는 정책 건의서를 채택한 뒤 회의를 마쳤다. 오후에는 독일 대통령궁인 벨뷔궁을 방문하여 크리스티안 불프 독일연방대통령에게 건의서를 제출했다. 불프 대통령은 양국 참가자들의 논의와 노고를 따뜻하게 치하했다.
이번 포럼은 두 대륙에서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선도적 역할을 이루고 있는 두 나라가 당면한 의제를 함께 논의하는 자리였지만 결과적으로 세계의 당면한 고민이 명확히 드러나는 자리이기도 했다. 더 민주적이고 더 자연과 공생하며, 더 활발하게 교류하는 세계를 어떻게 이루어나갈 수 있을 것인가. 두 나라가 힘을 합치면 미래 세계를 선도해나갈 모델을 만들지 못할 것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유윤종 동아일보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