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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이루어진 나날들

재단의 체한연구펠로십 프로그램 수혜자로 선정되었다는 통보를 받던 그 날, 내가 얼마나 기뻤고 고마워했는지 아직도 그 감격을 잊을 수 없다.
재단은 나의 오래된 꿈을 이루게 해주었다. 한국은 한국어 전공자인 나한테 낯설면서도 익숙하고 신기하며 매력적인 땅이다. 재단의 덕분으로 꿈이 이루어진 지난 나날들, 나는 실컷 한국의 김치를 먹고 한국의 공기를 마시며 한국의 문화와 역사, 언어를 피부로 체험해보았다.



나는 중국 뤄양대(洛陽大) 한국어문학과 박사과정생이다. 뤄양은 중국의 베이징이나 상하이 등 대도시에 비하면 아주 작은 도시로 한국어 자료도 별로 없고 한국인 한국어 전문가는커녕 일반 한국인도 거의 없는 형편이다. 나는 학부 4년, 대학원 3년 과정을 거치면서 오랫동안 한국어를 공부해왔지만 기회가 없는 탓에 한국 방문은 그만두더라도 한국사람과 직접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 나누는 경험조차 드물었다.
그러므로 지난 시간의 나는 한국인을 만나도 쉽게 입을 열지 못할 정도의 ‘벙어리’ 한국어만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항상 한국에 직접 가서 책과 TV를 통해서만 만나보던 한국어나 한국, 한국인을 현장에서 공부하고 체험하며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꿈을 꾸었다. 2006년 3월 지도교수를 통하여 한국국제교류재단을 알게 된 나는 체한연구펠로십 프로그램에 신청했고 심의 등의 절차를 거쳐 드디어 2007년 8월 한국에 올 수 있게 되었다. 재단의 체한연구 펠로십 프로그램 수혜자로 선정되었다는 통보를 받던 그날, 내가 얼마나 기뻤고 고마워했는지 아직도 그 감격을 잊을 수 없다. 재단은 나의 오래된 꿈을 이루게 해주었다.
한국은 한국어 전공자인 나한테 낯설면서도 익숙하고 신기하며 매력적인 땅이다. 재단의 덕분으로 꿈이 이루어진 지난 나날들, 나는 실컷 한국의 김치를 먹고 한국의 공기를 마시며 한국의 문화와 역사, 언어를 피부로 체험해보았다.

서울광장의 여름 저녁
숙소가 광화문 근처에 있는 덕분에 나는 서울에 도착한 바로 이튿날 저녁 산책길에 ‘문화가 흐르는 시청광장’을 알게 되었다. 그날부터 8월 내내 나는 거의 매일 저녁마다 광장에 가서 시원한 여름 저녁 바람과 함께 다양한 한국문화를 만끽했다.
한국 전통무용, 판소리, 사물놀이, 퓨전 타악, 교향악, 뮤지컬, 발레, 시 낭송회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과 행사를 구경하고 음미하면서 나는 한국이 어떻게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한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었는지, 한류(韓流)가 왜 세계적으로 널리 퍼질 수 있었는지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다. 그 원동력은 바로 오랜 역사의 아름다운 전통문화와 그 문화를 창조했던, 그리고 지금도 창조하고 있는 부지런하며 끈기 있는 백의민족의 민족성에 있지 않나 싶다.

가을의 고도-경주
나의 고향 뤄양은 예부터 중국의 13조 고도로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는 역사도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뤄양의 룽먼(龍門)석굴도 중국 3대 석굴의 하나로 국내외 관광객들의 발길을 유혹하고 있다. 한국에는 뤄양과 닮은 도시로 경주가 있다.
나는 신라 천년의 고도인 경주가 나의 고향과 비슷한 점이 많아 남다른 관심을 가져왔다. 책이나 TV를 통해서가 아니라 경주에 직접 가서 내 나름의 호흡법으로 살아 숨 쉬는 천년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하는 것이 오랫동안의 소망이었다. 단풍이 한창인 지난해 늦가을, 나는 한국국제교류재단 덕분에 2박3일의 경주지방 답사를 다녀옴으로써 나의 오랜 숙원을 이루어냈다.
버스가 경주 경내에 들어오자 나는 길옆에 즐비해 있는 태종무열왕릉ㆍ천마총 등 각종 고대 무덤들로 인해 황홀경에 빠져들었다. 부드럽고 푸르싱싱한 잔디밭에 덮여 있는 왕릉과 무덤들은 오랜 세월의 흐름에도 옛날 그대로 조용히 있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눈서리가 몰아치는 데도, 아무 불평불만 없이, 아무 변화도 없이…. 이것이 바로 역사다. 나는 이런 역사가 좋다. 나도 이처럼 살고 싶고, 죽은 뒤에 이 같은 역사가 되고 싶다.
경주 하늘을 올려다보면 구름이 한 점도 없는 가을 하늘이고, 멀리 바라보면 울긋불긋한 단풍, 익을 대로 익은 황금벼가 한눈에 안겨온다. 늦가을 화사한 햇빛 아래 반짝이는 불국사의 청운교와 백운교, 멀리 들려오는 경주박물관 성덕대왕신종의 은은한 종소리, 석굴암에 단장하고 우아하게 앉아 있는 본존불…. 어느새 나는 고향으로 돌아온 것 같은 착각에 휩싸였다. 고향은 따뜻하고 푸근하며 정다운 느낌을 안겨주는 곳이다. 경주가 나에게 주는 느낌이 바로 이런 것이다. 나는 경주를 고향만큼 사랑한다. 경주가 바로 내 마음속에 있는 제2의 고향이다.

따뜻한 겨울의 고려대 도서관
한국에 있는 동안 나는 대전 한국과학기술원에서 열린 제 44차 한국어학회 전국학술대회에 참가했고, 종로도서관에서 한국 역사에 관한 특강도 들었으며, 서강대 포럼도 많이 가봤고, 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 한국어교실의 수업도 받아왔다.
이런 공부들을 통하여 나는 한국이나 한국어에 관해 중국에서는 배울 수 없는 생생한 지식을 많이 알게 되었다. 그 가운데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따뜻한 겨울의 고려대 도서관이다.
겨울에 들어서면서부터 나는 박사논문 자료수집을 하느라 고려대 도서관의 단골손님이 되었다. 밖은 추운 겨울 날씨지만 도서관 안은 따뜻한 봄 같았다.
물론 실내 온도도 그렇지만 그보다 더 나를 따뜻하게 해주는 것은 친절한 한국사람이다. 책을 어떻게 대출하고, 대출을 연장하는지 꼼꼼하게 가르쳐주는 도서관 직원, 복사카드를 어디서 사는지, 복사기가 어디에 있는지 목적지까지 길을 인도해주는 대학생 등 바로 친절한 그분들 때문에 나는 도서관을 효과적으로 잘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학생들이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니 나는 더더욱 봄처럼 따뜻한 공부 열의를 느끼게 되었고 나도 모르게 그 분위기와 한데 어울리고 싶었다.
이제 한국에서의 생활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나머지 시간을 열심히 살고 공부함으로써 내 꿈을 더 잘 이루고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도록 노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