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과 예술의 나라’로 알려진 스페인, 서울 중구 수하동 미래에셋 센터원 빌딩 서관 2층에 자리 잡은 한국국제교류재단 갤러리에 가면 그 스페인의 따사로운 속살을 만날 수 있다. 스페인 사진작가 15명의 작품을 전시하는 <사진에서 사진으로-스페인의 자화상> 사진전이 열리고 있어서다. 이번 사진전은 2012년 여수 세계박람회 참가를 계기로 스페인 국가문화활동협회(AC/E)가 주최하고 있으며 3월 8일까지 열린다.
변화하는 스페인의 여성상에서 찾은 시대의 단상
출품작가를 대표하여 방한한 작가 앙헬 마르코스(57) 씨를 10일 오후 전시실에서 만났다. 작가와의 대화를 준비하던 그는 전날 열린 개막식에 참석한 피로도 잊은 채 차분하고 느긋하게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사진평론가이자 큐레이터인 체마 코네싸(Chema Conesa)의 요청으로 이번 전시회에 출품하게 되었다는 그는 이번 전시회에서 ‘도시’를 테마로 1950년대부터 최근까지 스페인 도시들이 변해온 모습을 보여주게 되어 기쁘다고 밝혔다. 그가 출품한 4점의 작품은 모두 여성에게 포커스가 맞춰진 작품이다. 어떤 의도가 있을까?
“21세기의 변화된 스페인 여성상을 포착하려 했습니다. 가정이든 공적 조직이든 정상적으로 돌아가려면 여성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나요? 이번 출품작은 2000년에 작업한 ‘슈트(La chute)’ 연작 중 몇 점을 고른 것입니다. 슈트는 프랑스 어로 ‘떨어지다’ ‘변화하다’란 뜻으로, 변화하는 여성상을 표현한 시리즈죠. ”
그의 작품은 빛의 처리가 인상파 그림을 연상하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자신의 작품 특징인 빛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일상에서 서로의 시선이 엇갈리는 순간을 정밀하게 계산해 담아내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슈트 35의 경우 소품 하나하나는 물론 조명까지 신경을 써 촬영한 것입니다. 슈트 16은 인물 촬영 후 배경을 합성해 작품 의도를 살리면서 완성도를 높였죠.”
모티프는 인생, 그 자체
그의 사진 인생은 1980년 무렵 스페인에 관광 온 미국 사진작가를 우연히 만나면서 시작됐다. 그에게 카메라를 빌려 연인의 사진을 찍은 것이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 관심이 생긴 이후에는 책을 읽고 전문가에게 도제식으로 배우는 등 독학을 한 셈이다. 그 당시 스페인에는 사진 예술을 전문적으로 교육하는 곳이 없었고 가업으로 잇는 식이었기 때문이다.
광고 등에 사용되는 상업 사진을 찍는 것으로 시작했던 그의 사진 세계는 2000년부터 작품 세계로 들어갔다. 되풀이되지 않는 삶의 미묘한 모습을 담아내는 일이 매력적이라고 고백하는 그는 상업에서 예술로 돌아서면 수입이 줄지 않냐는 질문에 웃으며 말했다.
“강의도 하고 바야돌리드의 ‘올라 프로젝트’같은 예술 프로젝트에 참여하거나 미술관 의뢰로 작업하는 일이 많다. 세계 각국에서 열린 전시회도 참여하고, 또 작품 중에는 한 점에 5만 유로(한화 7,000만 원 상당)에 팔린 것도 있다.”
그에게 사진은 어떤 의미일까? 그는 스페인 출신으로 멕시코에서 활약한 유명한 사진가를 만난 일을 말을 인용했다. ‘예술은 요구 많은 애인과 같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사랑은 아름답지만 또한 고통이 따른다는 의미로 들렸다고 한다. 그에게 있어 사진도 그와 같다고.
“인생 그 자체가 모티프가 됩니다. 테마를 정해 집중 작업을 하는데 주로 도시 외곽의 빈부 격차가 심한 단면을 그렸습니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보정 작업도 많이 하기에 회화에 비해 사진예술을 평가절하 하는 경향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19세기의 시각이며 적어도 예술 사진은 삶의 내면을 그려낸다는 점에서 다른 예술 장르와 동등한 가치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는 전시회 관객이 자신을 작품에 대해 초점을 깊게 그려낸 비결과 카메라 기종을 묻자 통역을 통해 진지하게 설명해 주는 등 인터뷰 내내 열의에 찬 모습을 보였다. 자녀는 없지만 조카가 사진작가가 되고 싶다면 말리지 않겠다는 그는 사진의 미래를 낙관하는 듯 했다. 그에게 사진 예술가가 되려는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들어보았다.
“무엇보다 창작 열정이 중요합니다. 돈을 벌려고 사진 예술을 시작해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미국의 한 심리학자가 ‘우리 인생의 유일한 임무는 행복해지는 것이다. 행복해질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해볼 만하지 않은가’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게 바로 내가 해주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김성희 북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