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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AUTUMN

다양성이 공존하는 홍대 문화의 생태계

1980년대까지만 해도 홍대 앞은 일반적인 대학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분위기가 무르익으며 다양한 분야에서 창의적 실험과 도전이 모색되었다. 그 과정에서 홍대 지역은 ‘홍대 문화’라는 독자적인 정체성을 형성하며 외부적 환경 변화에 끊임없이 대응하고 있다.

홍대 앞은 과거 기차가 지나다니던 길목이었다. 폐선된 철길은 이제 흔적을 찾기 어렵지만, 철둑길을 따라 옹기종기 들어섰던 건물들은 ‘서교365’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옛 정취를 간직한 건물들에는 개성 있는 가게들이 들어서 있다.

홍대 앞에는 오랜 세월 축적된 독특한 대학 문화와 청년 문화가 있다. 이곳에서는 미술과 음악, 연극, 영화, 퍼포먼스 등 전방위적 예술 활동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또한 디자인, 만화, 출판, 광고, 패션, 디지털 콘텐츠 등 전문 업종도 밀집해 복합 문화 지역으로 성장해 왔다.

한마디로 홍대 지역은 새로운 트렌드를 선도하는 사람들의 놀이터다. 거리 곳곳에 개성 있고 자유로운 마인드를 지닌 대학생, 예술가, 클러버, 문화 기획자와 예술 경영인, 힙스터들이 활보한다. 이곳에 끊임없이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다.

홍대 앞 곳곳에서는 거리 공연을 하는 뮤지션들을 쉽게 볼 수 있다. 1990년대 이 지역이 활성화되면서 자연스럽게 버스킹 문화가 형성됐으며, 가수의 꿈을 키우기 위해 이곳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훗날 유명해진 아티스트들도 많다.
ⓒ 최태원(Choi Tae-won, 崔兌原)

범홍대권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홍대’는 서울 상수동(上水洞)에 소재한 홍익(弘益)대학교 주변의 번화가를 일컫는다. 이 지역은 ‘연대(연세대학교) 앞’이나 ‘이대(이화여자대학교) 앞’ 등 여느 대학가처럼 처음에는 ‘홍대 앞’이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이는 순전히 홍익대학교를 기준으로 한 지명이다.

1984년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이 개통되면서는 ‘홍대 입구’로 불리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1990년대 후반에는 서울시가 서울 전역에 ‘걷고 싶은 거리’ 사업을 대대적으로 펼쳤는데, 이 시기 홍대 앞에 걷고 싶은 거리 구간이 조성되고부터는 ‘홍대 거리’라는 명칭도 생겨났다. 이렇게 홍대 앞은 세월이 흐르면서 지칭하는 말도 다양해지고, 각 명칭이 포괄하는 장소도 점차 넓어지는 추세다. 최근에는 ‘홍대 지역’이라는 말도 쓰인다.

‘홍대’가 함의하는 지리적 범위의 확장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이 지하철이다. 2000년도 이후 지하철 6호선, 공항철도(Airport Railroad), 경의중앙선(Gyeongui-Jungang Line)이 차례로 개통하면서 홍대 지역은 홍대입구역(2호선, 공항철도, 경의중앙선)과 합정역(2호선, 6호선), 상수역(6호선)을 잇는 서울 최대의 상권이 형성되었다. 행정 구역으로 보면 기존 서교동, 상수동, 동교동에서 인근 연남동, 연희동, 합정동, 망원동, 성산동까지 폭넓게 아우르게 되었다.

홍대 앞은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연세대학교 앞을 중심으로 하는 ‘신촌권’에 속했지만 이후 독자적인 문화를 꽃피우며 성장했고, 현재는 ‘범홍대권’의 중심 지역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사진은 어울마당로 초입으로, 홍대 상권의 출발점이다. 대형 프랜차이즈 매장이 근방에 밀집해 있다. 이곳에 관광 안내소가 설치되어 있으며, 200미터 남짓 위쪽으로 걸어가면 홍익대학교 정문이 나온다.

옛 철길의 흔적

한강변에 위치한 서울화력발전소는 홍대 지역에 큰 영향을 끼친 문화적 유전자라 할 수 있다. 발전소 소재지의 지명을 따라 일반적으로 당인리(唐人里) 화력발전소라 불리는 이곳은 1930년 준공된 한국 최초의 발전 시설로, 한 해 전 개통된 당인리선(Danginri Line)을 통해 석탄과 물자를 공급받았다. 발전소 연료가 석탄에서 가스로 대체되자 더 이상 철도가 필요 없게 되었고, 이에 따라 1980년 당인리선이 폐선되었다.

‘서교365’는 당인리선이 남긴 흔적이다. 기차가 운행되지 않으면서 폐선된 철길은 도로와 주차장으로 바뀌었고, 일부 구간에는 2~3층짜리 낮은 건물들이 들어섰다. 부지가 협소하다 보니 2~5미터 폭의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형상이 연출되었다. 약 200미터가량 가늘고 길게 이어진 이 건물군이 서교365이다. 건물들이 서교동 365번지 일대에 자리하고 있어 이런 명칭이 붙었다.

서교365는 주변의 말쑥한 고층 건물들과 대조를 이룬다. 이 허름한 건물들을 둘러싸고 철거 논란이 지속되고 있지만, 옛 자취를 소중히 여기는 인근 상인들과 건축가들의 노력으로 아직까지는 보존되고 있다. 개성 있는 식당과 선술집, 가난한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많은 데다가 독특한 경관이 지닌 매력이 한몫했을 것이다.

당인리선이 지나갔던 길은 무허가 건물들이 헐리고 고급 카페와 술집, 음식점들이 들어서면서 대규모 상권으로 변모했고 홍대 지역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홍대입구역 7번 출구부터 상수역 방향으로 약 2㎞가량 뻗어 있는 이 길의 현재 공식 도로명은 ‘어울마당로’이다. 지난해에 마포구청이 이 길을 관광 특화 거리로 재정비하면서 ‘레드 로드(red road)’라는 이름을 새롭게 붙였다. 당인리 화력발전소는 건축가 조민석(Minsuk Cho)이 이끄는 매스스터디스(Mass Studies)의 설계에 따라 현재 리모델링 중인데, 2026년 전시실과 공연장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날 예정이다.

경의선숲길은 일반적인 공원과 달리 도심을 가로지르며 길게 이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2016년 옛 철길에 조성되었으며, 서울의 대표적 산책로이자 휴식처로서 시민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 마포구청

홍대 문화의 출발

인디와 대안, 언더그라운드로 요약되는 홍대 문화는 1955년 홍익대학교의 상수동 이전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홍익대 미대의 존재는 1970-80년대 이 지역의 정체성을 결정 지은 원동력이다. 이 시기에 작업실, 미술 학원, 공방, 미술 전문 서점, 스튜디오, 갤러리 등이 이곳에 자리 잡았다.

미술 학원은 미대생들의 작업실에서 시작하여 학원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가 1986년경 홍익대에서 산울림 소극장까지 이어진 길 양쪽으로 입시 전문 대형 미술 학원 거리가 생겨났다. 무수히 들어선 미술 학원들은 홍대 앞 특유의 풍경을 이루는 요소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2013년 이후 홍익대 미대가 실기 시험을 폐지하면서 미술 학원들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홍대 지역이 사회적 관심을 받으며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반 포스트 모던 양식의 고급 카페들이 등장하면서부터다. 문화예술인들이 드나들던 거리에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테마 카페와 복합 갤러리가 등장하면서 자유롭고 세련된 이미지가 부각되었다. 예술가들이 직접 운영하는 카페들도 늘어났다. 홍대 정문에서 극동방송국과 주차장 거리에 이르는 길 주변에 카페 골목이 형성되면서 이 일대는 ‘피카소 거리’로 불리게 되었다.

한편 소비 문화가 확산되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커져갔다. 1993년부터 홍익대 미대생들이 시작한 ‘거리 미술전(Street Art Exhibition)’은 홍대 문화의 정체성과 건강한 대학 문화를 지키기 위한 학생들의 대응이었다. 매년 담벼락 곳곳에 벽화 그리는 행사를 진행하였고, 그 결과 ‘벽화 거리’가 조성되었다.

홍대 클럽 거리에는 1990년대 중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이곳에서 일어난 인디 뮤직 신을 주도했던 라이브 클럽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올해 20주년을 맞은 클럽 FF도 그중 하나. ‘록 음악 맛집’으로 통하는 이곳은 크라잉넛(Crying Nut)이나 서울전자음악단(Seoul Electric Band) 같은 록 밴드들이 무대에 선다.

획일성에 대한 저항

홍대 지역에는 1990년대 중후반부터 라이브 클럽들이 생겨나며 지역 문화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클럽 문화는 기존에 형성돼 있던 미술 문화와 새롭게 나타난 소비 문화가 결합하며 탄생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2년에 생긴 카페 ‘발전소’다. 이곳은 음악 작업을 하던 가게 주인의 작업실에서 출발해 바(bar)로 발전했으며, 댄스 클럽의 원형이 되었다. 1994년에는 드럭(Drug)을 필두로 실험적, 도전적인 무대를 선보였던 라이브 클럽들이 성행했다. 클럽은 대안적인 놀이 문화를 찾던 이들의 해방구였다. 2000년대부터는 클럽의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들 클럽을 중심으로 다양한 축제들이 개최되었다.

이렇게 복합적인 문화 지역으로 성장한 홍대 앞은 2002년 한일월드컵을 계기로 정부가 지원하는 공공 프로젝트가 본격화되면서 문화 관광 지역으로 그 정체성이 전환되었다. 이로써 홍대 문화는 소수의 마니아들이 즐기던 문화에서 대중화, 관광 상품화되는 현상이 가속화되었다. 이에 대한 반작용도 나타났다. 임대료 상승으로 폐관 위기에 처한 소극장이나 철거 위기에 놓인 공연장을 지키려는 움직임이 나타난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서울프린지페스티벌, 한국실험예술제, 와우북페스티벌 등 다양한 분야의 언더그라운드 축제들이 개최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거대 자본이 유입되면서 많은 문화 공간들이 문을 닫게 되었다. 홍대 문화 형성에 중심적 역할을 하였던 주체들이 지속적으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에도 홍대 문화는 상업적 획일화에 저항하며 새롭게 변모하고 있다. 오랜 시간 축적되어 온 문화적 저력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문화 생산자들이 끊임없이 홍대 문화 생태계를 다층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이들로 인해 ‘홍대다움’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

이무용(Lee Mu-yong, 李武容) 전남대학교 문화전문대학원 교수(Professor, Graduate School of Culture, Chonnam National University)
한정현(Han Jung-hyun, 韓鼎鉉)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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